에따 러시아

러시아 모스크바의 한국식당 풍경, 1990년대 2000년대, 그리고 지금은..

비쉬켁 2017. 5. 2. 22:43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한국식당은 1990년대 초반만 해도 평양에서 직접 관리하는 평양식당보다 격이 떨어졌다. 아니, 한국식당이 문을 열기 전 서울에서 간 출장자들은 아예 평양식당에서 향수를 달래곤 했다.

아마도 91년 9월쯤이었을 던 것으로 기억한다. 출출한 배도 채울겸, 그 유명한 평양식당도 취재할 겸, 혼자 평양식당을 찾았다. 그때는 예약된 손님이 아니라면 문도 안열어주던 시절이다. 초인종을 누르고 기다리니, 안에서 북한 말씨가 들려왔다. "남조선에서 온 비즈니스맨인데, 점심 좀 먹고 싶다"고 하니, 두말없이 문을 열어줬다. 그건 그동안 많은 한국 사람들이 예약을 했든 안했든, 자주 들락거렸다는 의미다. 한국대사관 사람들도 평양식당을 찾았던 시절이니까.

1990년대 후반, 모스크바 한국식당은 소위 '빅3'가 전성기를 구가했다. 한국의 IMF가 닥치기 전, 모스크바 한국식당도 한국과 마찬가지로 흥청거렸다. OECD에 가입하면서, 선진국에 진입한 우리나라 아니던가? 한국인에 대한 러시아의 인식도 최고였다. 빅3의 한식당에 새로운 유형의 식당들이 도전장을 내밀곤했다. 그러나 그 새로운 식당들이 빅3를 어떻게 추월했는지 알 길은 없다. 귀국하고 난 뒤의 일인 데다, 2000년대 중반에 모스크바를 가니, 이미 한국 식당 '3국지'는 사라진 뒤였다. 

다행히 인터넷을 검색하니, 윤영순 경북대 교수(노어노문학과)가 쓴 글이 나온다. 러시아의 한식당이라는 주제다. 윤 교수는 "2000년대 초반만 해도 한국인 출장자들이 주로 드나들던 몇몇 한식당은 접근성도 떨어지고 가격까지 비싸서 가난한 유학생들에게도 그림의 떡이었다. 김치찌개, 된장찌개가 당시 10달러였으니 향수를 달래는 값치곤 상당했던 것이다. 사실 조잡한 인테리어에 분위기도 별로라서 그다지 가고 싶은 곳도 아니었다. 한식을 좋아한다는 외국인 친구들도 어지간히 친해지기 전에는 데려가지 않았다. 차라리 집으로 초대해서 간단한 우리 음식을 대접하는 편이 낫다고 생각했다"고 썼다.

맞다. 모스크바의 한식당은 이미 90년대부터, 윤교수가 유학시절을 할 즈음에
는 더욱이 유학생들이 드나들 만한 곳이 아니었다. 소위 빅3 식당에는 한번 가면 최하 100달러를 각오해야 한다. 그리고 2000년대 중반에 다시 모스크바를 가니, 한식당은 또 한번 변신을 한 상태였다. 초창기 빅3는 모두 문을 닫거나, 다른 곳으로 이전 혹은 인수됐고, 새로운 식당들이 빅3를 형성하고 있었다.

윤 교수는 기고문에서 "최근 접해본 러시아 한식당은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모스크바 시내 백화점에서 만난 러시아 친구는 근처 한식당에서 점심을 먹자고 제안했다. 그 식당은 땅값 비싸기로 유명한 모스크바에서도 붉은 광장 근처 중심가에 위치해 있었다. 유명 여행 평가 사이트에서 좋은 평점을 받은 그 한식당은 고풍스러운 건물 1층에 자리 잡고 있었는데, 점심시간이라 그런지 정장 차림의 현지 직장인들이 손님의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었다. 몇 년 전 보았던 뉴욕 맨해튼 한식당 앞에 현지인들이 줄을 늘어선 모습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고 했다.

"러시아 친구는 한식이 먹고 싶을 때마다 이곳에 온다고 했다. 교통도 편하고 음식의 맛과 질, 서비스에 비해 가격도 싼 게 장점"이라고 했다니, 한식당이 엄청나게 변하긴 했다. 하긴 빅3시절에도 한식당엔 러시아 사람들도 적지 않았다. 

윤교수는 "외국에 나가면 어지간하면 한식당을 찾지 않는 편인데 이번엔 현지 지인들 덕분에 한식당을 몇 차례나 가게 되었다"며 "덕분에 기존 러시아 한식당에 대한 선입견이 어느 정도 사라졌다"고 썼다. "한식당들은 중심가 열린 곳에 위치하고 있었고 서빙을 하는 종업원도, 손님도 현지인이 대부분이었다. 다들 익숙하게 한식을 주문하고 즐기는 모습은 한국과 한식의 달라진 위상을 보여주는 듯했다"고.

하지만 러시아 한식당의 초창기 풍경은 윤교수가 유학생이어서 잘 몰랐을 터. 빅3 한식당은 그 당시 러시아 식당 중에는 고급에 들었다. 러시아 사람들도 아무나 올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 러시아 손님?, 우리 담당들을 데려가면 그렇게 좋아했다. 소위 빅3는 고급 식당이었다. 

러시아의 거리 풍경중 가장 많이 변화한 것은 역시 일본의 초밥집이 사라진 것이다 윤교수도 "
거리마다 호황을 누리던 초밥집들은 찾아보기 어려워졌다"고 썼다. 초밥집이 사라진 계기는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 대서양을 건너 러시아를 직접 강타하면서, 러시아 사람들의 주머니 사정이 쪼그라들었다. 값비싼 초밥집에 가서 한가하게 음식을 즐길만큼 러시아 경제가 받쳐주지 못했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서방의 경제제재에 국제유가 하락 등으로 몇년째 러시아 경제가 바닥을 헤매고 있으니, 당연한 거리 풍경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바이러시아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