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Four Seasons Con No.2
in G minor, RV 315 'L'Estate 비발디 사계중 여름 'L'Estate (Summer) Vivaldi, Antonio 1878-1741
Vivaldi - 사계(四季)
비발디의 사계는 '화성과 인벤션의 시도' 라는 제목이 붙어있는 비발디의 바이얼린협주곡집 Op.8의 1-4번 까지의 네 곡, 즉 '봄' '여름' '가을' '겨울' 을 묶어 일컫는 말이다. 사계는 멜로디가 아름다워 대중의 굉장한 사랑을 받고 있다는 것 외에, 중요한 몇 가지 의의를 가지고 있다.
첫째, 바로크 시대의 고유한 형식인 '콘체르토 그로소'에서 탈피해 고전주의시대에 그 정형을 확립하는 '독주 협주곡' 형태를 지니고 있다는 점이고. 두 번째 고음악 이야기에 있는 '사계-봄'의 악보를 보면 알 수 있듯이, 사계는 독주바이얼린과 제1, 제2 바이얼린, 비올라, 콘티누오로 구성된 현악5부의 형식을 취하고 있다.
바로크 시대의 협주곡은 여러개의 독주악기가 참여하는 '콘체르토 그로소(대협주곡)' 의 형태를 취하고 있는 데 반해 '사계'는 바이얼린만을 독주악기로 사용하고 있다.
둘째, 당시에 일반적이지 않았으며, 고전주의를 지나 낭만주의 시대에 활성화되기 시작하는 '표제음악적 성격'을 띄고 있다는 점이다. 사계는 협주곡으로서는 최초로 표제음악을 내세우고 있다는 점에서 기념비적이라 할 수 있다.
사계의 네 협주곡에는 각각 '봄' '여름' '가을' '겨울' 이라는 제목이 붙어 있으며, 각 악장의 악보위에는 '소네트 (시의 한 형식으로서 14행 시를 일컫는다.)' 가 제시되어 있다. 다시 말해 이 네 협주곡은 작자미상의 소네트를 기초로 이탈리아의 사계절에서 느낄 수 있는 인상이나 자연의 변화를 대단히 시각적, 묘사적으로 그리고 있다.
'사계'는 표제음악(묘사음악)이기 때문에 알고 들으면 그냥 들을 때보다 보다 생생한 즐거움과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다.
여름 'L'Estate (Summer)
1 : Movement's Sonnet (Allegro) 여름 제1악장
Allegro의 빠른 악장. 전반부에 가축과 사람을 지치게 만들고, 또 푸른 들판의 나무와 풀들까지도 붉게 물들 이는 폭염을 권태롭게 묘사하는 짧은 모티브로 시작하며 이어 솔로바이얼린이 비둘기의 울음소리를, 현악약주가 산들바람을 묘사한 후 32분음표로 연결되는 격렬한 폭풍으로 곡을 끝맺는다.
2 : Movement's Sonnet (Adagio) 여름 제2악장
천둥이 요란하게 울리고 놀란 가축들은 두려움에 떤다 2악장은 22마디에 불과한 짧은 간주곡(패지시)의 형태를 취하고 있다. 폭풍전야의 불안한 생태를 사실적으로 묘사하고 있는 악장이다. 사람을 공포와 불안으로 몰고가는 번개와 천둥을 트레몰로 강주로 표현하고 이후에 솔로바이얼린은 귀찮고 성가신 파리와 모기떼의 극성을 익살스럽게 표현해내고 있다.
3 : Movement's Sonnet (Presto) 여름 제3악장
번개가 번쩍이는 하늘에서 천둥이 울리고 싸락눈이 내려 여문 곡식들을 망쳤다. 갑자기 들이닥친 폭풍을 묘사한 것이다. 무시무시한 번갯불과 천둥소리가 들리고 폭우가 쏟아진다. 이로써 애써 가꾼 농작물에 엄청난 피해를 주고 사람들이 걱정하는 모습을 악보에 옮겼다. 비스듬히퍼붓는 하행 패시지나, 트레몰로를 강주하는 현악합주로 묘사되고 있다
Antonio Vivaldi(1678 ~ 1741 / 이탈리아)
안토니오 '비발디'는 1678년 베네치아에서 태어나 1741년 빈에서 세상을 떠난 이탈리아의 위대한 작곡가인 동시에 뛰어난 바이올린 연주가 였으며, 또한 교육가이기도 하였다. 1703년 카톨릭 성당의 사제로 출발하였으나 건강이 나빠져 1년 후에 물러나 그 후로는 전적으로 음악에 헌신하였다. '비발디'는 붉은머리였기 때문에 항상 '빨강머리의 사제'라고 불리웠었다. 그리고 1703 ~ 1740년까지 베니스의 여자 고아원인 피에타 음악학교의 지휘자 겸 작곡가, 교사, 음악 감독을 역임했었다. 그는 이 학교를 위하여 모테트와 칸타타, 오라토리오 등을 작곡하였다. 특히 '비발디'가 결정한 3악장(알레그로-아다지오- 알레그로)에 의한 협주곡 형식은 J.S.Bach에게 영향을 주어 바로크 시대의 가장 중요한 협주곡 형식이 되었다.
비발디는 미사전례를 앞두고도 온데간데없이사라지기 일쑤였다고 한다. 사방을 찾아다니노라면 수도원 으슥한 구석에서 바이올린이나 켜고 있는 것을 발견하곤 했다니, 결코 모범적인 사제는 아니었음이 분명하다. 그러나 작곡가겸 바이올리스트로서의 그의 명성은 이미 전 유럽에 퍼져 있었다. 25세 때는 피에타 여자 음악원의 바이올린 교사로 임명되었다. 여성으로만 구성된 그 곳의 오케스트라는 상당히 수준이 높아 그녀들을 위해 많은 곡을 작곡하기도 했다.
'똑같은 곡을 1백곡이나 써갈긴 사람이다.' 이것이 험담가로도 유명한 후세의 스트라빈스키가 비발디를 가르켜 비꼬아 한 말이다. 그도 그럴 것이 비발디는 교회용, 행사용 등등으로 몇 개 악장으로 되어 꽤 긴 곡을 평균 2,3일에 한 곡씩은 써야 할 처지였다. 사보가들이 미처 따라오지 못할 만큼 초고속으로 작곡을 해댄 결과 그는 협주곡만 해도 450곡이나 남겼으니 그게 그거라고 할 정도로 서로가 엇비슷해질 수밖에. 45세 무렵 비발디는 안나 지로라는 여가수를 알게 되어 순회공연까지 함께 다녔다. 당연히 사제로서 미사를 빼먹는 일은 더욱 잦아졌고, 그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눈길이 고울 리 없었다. 베 네치아에서의 그의 평판은 갈수록 땅으로 떨어졌다. 결국 그는 고향을 떠나 유럽 각지를 전전해야 했다. 오스트리아의 빈에서 극도의 빈곤 속에서 객사한 것은 그의 나이 63세 때였다. 피붙이라고는 없었던 그를 기다리는 곳이라고는 빈 변두리의 쓸쓸한 빈민묘지 뿐이었다.
비발디의 음악은 한때는 잊혀져가는 듯했지만 2차 대전 이후로 다시 소생해 세인의 사랑을 받고 있다. 특히 이탈리아 실내악단에서는 그의 각종 악곡들을 빼놓을 수 없는 스탠더드 레퍼토리로 삼고 있다고 하며, '비발디'의 협주곡 중에서 제5번 A장조 '바다의 폭풍우', 제6번 a단조 '즐거움', 제7번 D장조, 제18번 g단조, 그리고 '사계'는 너무나 잘알려진 곡이다. 이 사계는 베토벤의 '전원' 교향곡의 선조가 된 곡으로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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