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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러 한국대사관에도 마체고라 주북한 대사와 같은 외교관이 근무하게 하려면?

비쉬켁 2018. 10. 3. 21:22

우윤근 주러시아 대사가 부산항에 억류된 러시아 화물선 세바스토폴 호 사태와 관련, 1일 러시아 외무부로 초치돼 항의를 받은 지 하룻만에 우리 외교부가 러시아 화물선 억류를 해제했다. 때맞춰 우 대사도 러시아 언론들과 인터뷰를 가졌다.

세바스토폴 호가 조기에 석방되었으니, 인터뷰에서 한-러 양국간 현안에 관한 이야기는 별로 나오지 않았다. 한반도 화해 분위기, 즉 김정은 북한 위원장의 방한(남북정상회담) 시기와 북미정상회담 개최 시기, 남북한-러시아간 경협 등에 관한 질문이 많았다. 연합뉴스는 현지 언론을 인용해 "2차 북미 정상회담이 다음 달 미국 중간 선거 이후에 열릴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한 우 대사 발언만 짧게 소개했다.

우윤근 주러 대사의 인터뷰가 실린 RT 캡처
우윤근 주러 대사의 인터뷰가 실린 RT 캡처

 

여기서 궁금한 것 하나. 현지 언론과의 우 대사 인터뷰는 러시아어로? 영어로? 통역으로? 어떻게 진행됐을까? 언젠가 페이스북에서 어떤 분이 우 대사는 러시아어를 구사할 줄 아느냐고 물었다. 상트페테르부르크에 유학을 했으니 기본적인 러시아어는 구사할 것으로 생각한다고 답변했다.

궁금한 차에 강경화 외교부 장관의 '우리 외교관 외국어 실력 부족' 질타에 대한 전직 외교관(장부승 일본 간사이 외국어대 교수)의 반박(?)글이 눈의 띄였다. 공감이 가는 글이다. 긴 글 중에서 한-러 외교관계에서 주목할 만하고, 비교 가능한 대목만 좀 살펴보자.

"주북한 러시아대사 마체고라는 외교관 경력이 거의 40년이다. 그 중 거의 절반을 남북한에서 살았다. 모스크바에 근무할 때도 대부분 한반도 관련 업무를 담당했다. 마체고라 대사는 러시아에서 '므기모(MGIMO)'라고 불리는 모스크바국제관계대학교 출신이다. 이 학교는 국립 외교관 학교다. 구 소련 시절에는 러시아 외교관의 대부분이 이 학교 출신들로 충원됐다."

"마체고라 대사는 어떻게 한국 전문가가 됐을까. 그는 국립 외교관 학교를 졸업하면서 한국 전문가로 선발됐다. 사회주의 국가 특유의 하향식 결정 방식이다. 직업은 당과 국가가 정해준다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그는 평생을 북한, 한국, 모스크바를 오가면서 근무하게 됐다. 마체고라 대사와 대화를 나누다 보면 이 사람이 정말 러시아 사람 맞나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단지 외국인으로서 한국 말을 잘 하는 정도가 아니다. 한국어 속담도 자유자재로 구사한다. 한국인이 잘 모르는 단어들도 마치 한국 사람인 것처럼 맛깔나게 잘 쓰곤 한다."

마체고라 대사는 모스크바 특파원 시절인 1990년대 말 처음 만났고, 2000년대 초 한국에 들어오면 가끔 식사를 같이 하곤했다. 그때도 한국말은 꽤나 했다. 그로부터 무려 십몇년이 더 지났으니, 그의 한국어 실력은 물어보나 마나다. 

주한 러시아 대사관에는 마체고라와 같은 외교관이 적지 않다. 물론 주한대사에는 중국 일본 인도 등 아시아권 전문 고위 인사가 오곤 했지만, 그럴 경우 공사직에는 한반도 전문가 맡아 대사를 보좌했다. 반면 주러 한국대사관에는 러시아어 전공자가 좀 있을까? 주러 대사관 개설 초기에 근무했던 외교관들은 세월이 지나면서 우크라이나 대사, 이르쿠츠크, 블라디보스토크, 상트페테르부르크 총영사 등을 맡기도 했다. 이 분들도 근본적으로 러시아어 구사 외교관이 아니다. 이석배 총영사, 이진현 전 총영사 정도가 러시아어 전공자다.   

주러 한국대사관
주러 한국대사관

 

전직 외교관은 또 이렇게 말했다.
"과거 블라디보스토크 근무 시절 만난 중국 영사관 직원은 러시아어를 기가 막히게 했다. 눈감고 들으면 러시아 사람인 줄 착각할 정도였다. 물어보니 자기는 중학교 때부터 러시아어 공부를 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이 중국 외교관은 영어를 전혀 못했다. 자기는 학교에서 영어를 배워 본 적이 없다고 했다. 내가 무심코 영어로 말을 하면 이 중국 외교관은 당황해 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무슨 말인지 잘 못 알아 들은 것이다."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만난 일본 외교관들도 마찬가지였다. 대부분이 러시아권 근무 경력이 있는 사람들이었다. 중국이나 러시아 외교부에서는 언어 전공을 한 쪽으로 정하면 계속 그 업무를 맡긴다. 그리고 그 쪽 전공인 사람들 중에 경쟁을 시켜서 나중에 대사도 시켜 주고 다른 고위직도 시켜 준다. 당연히 소수 언어라 해도 열심히 하겠다는 사람이 어느 정도 있을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우리 외교부는 어떤가?
그는 "한국 외교부에서는 영어 이외에 다른 언어를 잘한다고 소문이 나면 오히려 불리해진다. 한국 외교부에서 차관보급 이상으로 올라가려고 하면 소위 요직으로 분류되는 주요 과와 국들을 두루두루 근무해서 다양한 경력을 확보해 두는 것이 유리하다. 어느 한 분야나 언어 쪽으로 전문가가 되면 여러 부서를 총괄하는 고위직으로 승진하는 데 유리하지 않은 것이다"고 외교부 전체 분위기를 전했다. 그런 분위기를 깨기 위해 강경화 외교장관을 발탁했는데, 이번에는 외국어 실력이 부족하다고 질책하니, 외교관들로서는 모두 반박 글을 쓰고 싶을 게다. 

외교부 조직과 체계 등도 아마 일본 외무성에서 배워왔을 것으로 추측된다. 지금은 바뀌었지만, 기본적으로 외무고시란 선발시험부터 그렇다. 이제는 일본에서 교수로 근무하는 전직 외교관에 따르면 일본의 외무고시에 해당하는 분야는 국가공무원시험 종합직이다. 일본 외무성의 전체 인력 규모가 우리보다 거의 3배 가까이나 되는데도, 매년 이 종합직 출신을 대략 20명 내외 밖에 뽑지 않는다. 

거기에는 이유가 있다. 종합직 출신들은 혹독한 훈련을 거쳐 본부의 국장급 이상 간부들과 대사, 총영사 등 해외공관장을 맡을 사람들이다. 그래서 이들은 본부의 여러 과들을 돌아가면서 실무 경험을 쌓게 한다. 외교관이긴 하지만, 해외 공관 근무도 많이 시키지 않는다. 

대신 현장에서 현지어를 유창하게 구사하면서 외교활동을 맡는 직군은 따로 있다. 종합직보다 한 직급 아래인 외국어 전문가 직군이 일본 외무성에 있다고 한다. 전문가 직군은 특정 언어나 지역 쪽으로 방향을 잡아 전문성을 쌓게 하고 해외공관도 가급적 그쪽으로만 계속 내보낸다. 그러니 당연히 해당 지역 외국어를 잘할 수 밖에 없다. 

우리도 현지 언어를 능통하게 구사하는 전문가를 채용하기도 했다. 혹시 강경화 장관도 그 대상이 아니었던가? 전직 외교관은 현지 전문가를 구하는 우리 정부의 눈높이가 현실에 맞지 않았다고 평가했다. 일본 외무성과 같은 이중적인 외교관 양성 체계가 자리를 잡지 못한 것이다.

그렇다고 러시아와 같은 전문가 양성에도 관심이 별로 없다. 모두 미국이나 유럽 좋은 지역으로 나가려고 줄을 댄다. 전직 외교관의 한탄처럼, 러시아에 오래 근무한 전문외교관을 러시아 대사로 내보내는 관례를 우리 정부가 만든다면, 주러 대사관에도 '러시아어 열공' 외교관들이 많이 생길 터인데, 아직은 시기 상조라고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