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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수록 꼬이는 러-나토 관계, 나토 주재 러 대표부 내달 1일부터 사실상 폐쇄

비쉬켁 2021. 10. 19. 20:33

러시아와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간에 긴장완화를 위한 지속적인 대화가 끊길 위기에 처했다.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은 18일 이르면 내달 1일부터 나토 주재 러시아 대표부가 업무를 잠정 중단한다고 발표했다.

나토 주재 러시아 대표부는 지난 1998년 브뤼셀에 설치됐으며, 알렉산드르 그루쉬코 대표부 대사가 지난 2018년 임지를 떠나면서 대사 자리는 3년째 공석이다.


라브로프 장관, 나토로부터 러시아 외교관 추방 이유에 대해 어떤 설명도 듣지 못했다고 밝혀/얀덱스 캡처

 


현지 언론에 따르면 라브로프 장관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나토 측의 의도적인 (적대)행보로 기본적 외교 활동을 하기에 합당한 조건이 사실상 사라졌다"며 "나토의 행동에 대한 대응으로 나토 주재 러시아 대표부의 업무를 잠정 중단한다"고 밝혔다. 그 이유로 나토가 러시아와 동등한 대화를 하거나 공동 업무를 하는 데 관심이 없다는 점을 들었다.

러시아 측의 이번 조치는 당장 나토 측이 지난 6일 러시아 상주 대표부 직원 8명에 대한 외교관 자격을 취소하고, 2명을 추방한 데 따른 맞대응으로 해석된다. 나토 측의 자격 취소및 추방 조치로 나토 주재 러시아 대표부 소속 외교관의 자리는 (20명에서) 10명으로 줄었고, 그마저도 대표부 업무 중단에 따라 대부분 귀국할 것으로 보인다. 사실상 주나토 러시아 대표부의 폐쇄 수순이다.

나토 측은 러시아 대표부 소속 외교관의 자격을 취소, 추방하면서 "그들은 정보요원들로, 표적 암살 등 공격적 행위에 연루됐다"는 의혹을 제기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드미트리 페스코프 크렘린 대변인은 "나토의 (실제적인) 행동이 '모스크바와의 대화가 중요하다'는 말과 모순되며, 러시아는 더 이상 나토와의 관계 정상화에 대한 환상을 갖지 않는다"고 반발했다. 러시아의 이번 맞대응 조치를 예고한 셈이다.


기자회견에서 주 나토 러시아 대표부 업무 중단을 발표하는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현지 매체 RT 캡처

 


러시아 외무부는 나토 주재 러시아 대표부 업무 중단과 동시에 모스크바 주재 나토 대표부도 잠정 폐쇄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라브로프 장관은 이날 회견에서 나토 대표부 소속 외교관 자격을 내달 1일부터 취소할 것이라고 밝혔다.

주러 벨기에 대사관 부속 기관으로 운영돼온 나토 군사연락사무소의 활동 역시 중단된다. 2002년 설치된 군사연락사무소는 나토 군사위원회와 러시아 국방부 간의 '핫 라인' 채널로 꼽혔다. 나토와의 긴급 연락은 앞으로 주 벨기에 러시아 대사가 맡게 될 것이라고 라브로프 장관은 밝혔다.

현지 언론에 따르면 라브로프 장관은 이번 조치를 발표하기에 앞서, 뉴욕에서 옌스 스톨텐베르그 나토 사무총장을 만나는 등 관계 악화를 막기 위해 노력한 것으로 전해졌다. 스톨텐베르그 총장은 라브로프 장관에게 "가능한 모든 방법을 통해 러시아와의 관계 정상화에 대한 나토측의 의지를 전달했다"고 강조했으나, 실질적으로는 도움이 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근본적인 이유는 상호 불신에 있다. 스톨텐베르그 총장은 지난 6월 초 "나토와 러시아의 관계가 밑바닥까지 떨어졌다"며 19개월만에 나토-러시아 이사회 개최를 제안했다. 그러면서 나토는 '러시아의 증가하는 군사적 위협'을 포함한 '미래의 위협에 대응하는 새로운 독트린'을 채택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서로 상반되는 메시지가 거의 동시에 나온 것이다. 라브로프 장관이 기자회견에서 "가까운 미래에 (나토와의 관계에서) 어떤 변화가 있을 것처럼 행동할 필요는 없다"고 지적한 이유다.

라브로프 장관은 특히 "나토 주재 러시아 대표부 직원이 2015년과 2018년 두 번이나 줄었으며 나토 측은 현장에서도 러시아 외교관과의 접촉을 '가능한 한 많이' 줄였다"고 불만을 표시하기도 했다.

 


브뤼셀에 있는 나토 본부. 미 9.11테러 20주년을 맞아 30개 회원국 국기가 반기로 게양돼 있다/사진출처:나토 인스타그램 계정

나토 본부서 이뤄진 미 9.11테러 20주년 추모식/사진출처:인스타그램

 


러시아의 이번 조치는 공교롭게도 로이드 오스틴 미 국방장관의 우크라이나·조지아(러시아식으로는 그루지야)·루마니아 3국 순방을 앞두고 발표됐다. 러시아의 노림수를 예상할 수 있는 대목이다.

러시아 온라인 매체 rbc는 지난 17일 오스틴 미 국방장관이 내주로 예정된 3국 순방에서 우크라나아와 그루지야의 나토 가입을 종용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보도했다. 이 매체는 오스틴 국방장관이 “순방 국가의 정상들과 흑해 안보 및 협력 강화 문제를 논의하면서, 우크라이나와 조지아에 대해 나토의 문이 열려 있음을 강조할 것”이라고 전했다. "양국에 나토 가입을 위한 자격 및 조건을 갖출 수 있도록 필요한 조치를 촉구할 것”이라고도 했다.

양국의 나토 가입은 지난 2008년 추진됐으나 독일과 프랑스의 반대에 부딪혀 무산된 바 있다.


페스코프 크렘린 대변인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시 실질적인 조치 경고/얀덱스 캡처

 


우크라이나·그루지야의 나토 가입은 러시아-나토 관계를 근본적으로 뒤바꿀 중대한 지정학적 변화다. 러시아의 직접적인 반발을 불러올 사안이다. 크렘린 측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은 푸틴 대통령이 직접 경고한 ‘레드라인(선)을 넘어서는 문제”라고 지적했다.

러시아의 나토 대표부 업무 중단은 '사즉생'의 심정으로 빼든 카드인지 모른다. 독일과 프랑스는 2008년에 이어 또 다시 미국의 우크라이나 나토 가입 추진을 대놓고 반대할 명분을 갖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