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트로 포로셴코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21일 대선 패배를 인정했다. 경쟁 상대인 블라디미르 젤렌스키 후보의 압도적 승리로 나타난 대선 출구조사 결과가 발표되자 즉각 패배를 시인했다.
젤렌스키 후보는 짤막한 연설을 통해 지지자들에게 감사의 뜻을 표시했다. 그는 "결코 여러분을 실망하게 하지 않을 것"이라며 "나는 아직 공식적으로 대통령은 아니지만, 우크라이나인으로서 모든 옛 소련 국가를 향해 이렇게 말할 수 있다. 우릴 보라. 무엇이든 가능하다"고 말했다.


'국가 수반'을 뽑는 선거에서 일방이 패배를 시인하면 그것으로 끝이다. 국가별로 그 타이밍이 다르다. 우리나라는 개표가 거의 끝나야 패배를 시인한다. 지역적 몰표 등 마지막 순간까지 변수가 많다는 뜻이다.
그러나 프랑스 등 유럽의 주요 국가들은 다르다. 대통령의 권력이 막강한 프랑스도 대선 출구조사 결과가 나오면 바로 인정한다. 그만큼 출구조사의 신뢰도가 높고, 개표 결과도 출구조사와 다르지 않았다.
이번 우크라이나의 경우, 출구조사가 보여준 두 후보의 득표율 격차가 너무 컸다. 이날 발표된 키예프 국제사회연구소와 라줌코프센터 출구조사 결과, 젤렌스키 후보는 73.2%, 포로셴코 대통령 25.3%였다.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젠 젤렌스키 후보가 제6대 우크라이나 대통령으로 취임하는 일만 남았다. 여기서 젤렌스키 후보에 대한 혼선 몇 가지를 정리해 보자.
국내 언론은 볼로디미르 젤렌스키라고 쓴다. 하지만 러시아 언론은 블라디미르 젤렌스키라고 쓴다. 우크라이나어로 볼로디미르로 읽는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아마도 대통령에 취임하면 그가 러시아측에 공식적으로 이렇게 써 달라고 요청할 것이다. 그때까지 바이러시아는 블라디미르 젤렌스키라고 쓸 계획이다.
또 하나. 국내언론은 젤렌스키 후보를 소개할 때 '코미디언' 출신의 정치신인이라고 한다. 그가 코미디언 프로그램에 출연한 것은 맞지만, 그의 인생역정을 그 한마디로 압축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
러시아 언론은 '쇼맨'이라고 부른다. 여기서 '쇼맨'은 넓은 의미의 '엔터테이너'로 해석해야 한다. 엔터네이너 산업을 일으킨 비즈니스맨, 엔터테이너 감독 배우 작가.. 또 코미디언까지.
러시아 언론은 결선투표에 나선 젤렌스키 후보를 이렇게 정의했다.
'우크라이나의 공공 및 정치 인사, 쇼맨, 코미디언, 감독, 프로듀서, 작가. Quarter-95 스튜디오의 창립자이자 리더, 예술 감독. 2019년 우크라이나 대선의 대통령 후보, 1차 투표 승자및 결선투표 후보'
그는 인기 TV프로그램 '국민의 종' Слуга народа에서 주연을 맡았고, 그 인기를 바탕으로 정당('국민의 종')을 만들고, 대선후보로 나선 것은 분명하디.
하지만 앞선 그의 경력에서 보듯 '코미디언 출신의 배우'라고 착각하면 안된다. 엔터테이너 비즈니스 분야에서 큰 성공을 이룬 '비즈니스맨'이기도 하다. 대학에서 법학을 공부했지만, 엔터테이너 분야에 진출해 큰 성공을 거뒀다. 소위 자수성가한 인물로 '스토리'를 가진 인물이다. 대중들에겐 믿고 따를 만한 인물이라는 이미지를 준다.
취임식만 남겨놓은 젤렌스키 앞에는 만만치 않은 현안들이 산적해 있다. 우선 러시아와의 관계. 그는 선거 운동과정에서 우크라이나 동부지역 분쟁 해결을 위해 러시아와 대화에 나서겠다고 했다. 적대적 태도로 일관한 포로셴코 대통령과는 달리 러시아와 관계개선에 나설 것이라는 의향으로 들린다.
그러나 현지 전문가들은 젤렌스키 후보가 취임해도 포로셴코 정부의 친서방 노선에 변화가 없으리라 전망했다. 방법론의 차이는 있지만 그는 유럽연합(EU)과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가입을 지지하는 등 친서방 성향을 드러냈다.
또다른 현안은 경제난 극복이다. 글로벌 경제침체 흐름에 동부지역 분쟁, 러시아와의 경제적 단절 등으로 우크라이나 경제는 사상 최악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가 제1 공약으로 내세운 권력의 부정부패 청산도 말처럼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70%가 넘는 국민의 절대적 지지를 바탕으로 전 정권에 대한 대대적인 '적폐청산' 캠페인을 벌일 것으로 예상되지만, 경제 회복이라는 '생존형 명제' 앞에서 그 강도를 조절할 수 밖에 없을 가능성도 있다.
대선에서 패배한 포로셴코 대통령은 이날 대통령직 인수인계에 적극 협조하겠다는 뜻을 밝히면서 "나는 집무실을 떠나지만, 정계를 떠나는 것이 아님을 확실히 강조하고 싶다"고 차기 도전 의사를 분명히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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