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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레 '호두까기 인형', 러시아도 한국도 '표 구하느라' 난리

비쉬켁 2021. 11. 28. 18:13

연말에 즐기는 발레 공연의 대표적인 레퍼토리는 역시 '호두까기 인형'이다. 신종 코로나(COVID 19) 사태로 지난해 연말 관객을 만나지 못한 탓인지, 한국에서도 러시아에서도 '호두까기 인형'(러시아어로는 '쉘쿤치크' Щелкунчик) 발레 티켓을 구하려는 팬들의 열기가 뜨겁다.

렌 TV 등 현지 언론에 따르면 모스크바 볼쇼이극장 앞에는 26, 27일 연말 '호두까기 인형' 발레 표를 구하기 위한 시민들이 몰려 큰 혼잡이 빚어졌다. 현지 TV 영상을 보면 혼잡을 보다 못한 한 시민이 "우리 모두 무질서한 '양떼'가 되지 말고, 4명씩 한 줄로 서자"고 독려하는 모습이 매우 낯설다. 도대체 무슨 일이 생겼길래, 이럴까?


호두까기 인형 발레표를 구하기 위한 긴 줄이 볼쇼이 발레 매표소앞에 형성됐다/얀덱스 캡처


"다같이 줄을 서자"고 독려하는 한 시민(왼쪽)/현지 매체 이즈베스티야 동영상 캡처

 


볼쇼이 극장 측은 26일 밤 11시에야 예약용 팔찌(표)를 나눠주기 시작했다고 한다. 다음날 아침 매표소에 그 팔찌를 보여줘야 '호두까기 인형' 입장권을 살 수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볼쇼이 극장은 전통적으로 12월에 크리스마스와 신년 맞이 '호두까기 인형' 발레를 무대에 올리는데, 최정상급 무용수들이 총출동한다. 그래서 최고 수준의 '연말 공연'을 보기 위해 모스크바 시민들은 미리미리 티켓을 예약하는 게 정상인데, 올해는 악재가 겹쳤다.

우선 코로나 4차 파동으로 볼쇼이 극장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QR코드가 필요하다. 여기서 QR코드는 코로나 백신을 맞았거나 감염후 완쾌 판정시 받을 수 있는 특정장소 출입허가증이다. 최근 국내에 등장하는 용어로는 '백신 패스'다. QR코드가 없는 사람에게는 원칙적으로 표를 팔지 못한다. 기존의 온라인 예매가 불가능해진 것이다.

또 볼쇼이 극장에 예상치 못한 사고가 잇따라 발생했다. 지난달 9일 볼쇼이 극장에서는 오페라 공연 도중 공중에 매달려 있던 무대 장식물이 아래로 떨어지면서 배우 1명이 숨졌다. 지난 22일에는 소화 설비의 오작동으로 무대가 소화기 물에 잠기는 사고가 발생했다. 잇따른 사고의 뒷수습에 연말 공연 스케줄이 헝클어졌고, 티켓 판매도 덩달아 늦어졌다고 한다.


모스크바 볼쇼이 극장앞에 길게 줄을 선 모습/현지 매체 동영상 캡처

 


현지 언론에 따르면 27일 오전 5시부터 볼쇼이 극장 앞에는 입장권을 사기 위해 줄을 서기 시작해 한때 2천 여명이 길게 늘어섰다고 한다. 구소련 시절 부족한 식료품을 사기 위해 자주 등장했던 줄서기가 '발레 공연'을 보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다.

한 여성은 “어제 500명이 예약용 팔찌를 받았고, 오늘 오전 12시에 새로운 팔찌가 배포된다"며 "오늘도 500명이 받을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그럴 경우, 그녀는 오랫동안 줄을 선 보람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인터뷰한 언론은 전했다.

'호두까기 인형' 표 구하기기 이렇게 어렵다 보니, 주변에 암표상들도 판을 치고 있다고 한다. 티켓 가격은 1,500루블(2만4천원)에서 1만5,000 루블(24만원)까지 다양하다. 물론 12월 31일 마지막 공연은 더 비싸다.
호두까기 인형은 E.T.A(에른스트 테오도르 아마데우스) 호프만의 동화 '호두까기 인형과 쥐의 왕'을 바탕으로 러시아 작곡가 차이코프스키와 안무가 마리우스 프티파가 탄생시킨 고전발레의 대표작이다. 차이코프스키의 아름다운 음악과 화려한 춤, 마법 같은 사랑 이야기로 1892년 초연된 후 지금까지 연말이면 어김없이 등장하는 스테디 셀러 발레다.

크리스마스 이브에 '호두까기 인형'(실제로 이 인형으로 호두를 깐다)을 선물 받은 소녀 '클라라'가 왕자로 변신한 '호두까기 인형'과 함께 과자의 나라로 모험을 떠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국내 발레 공연계도 연말 특수를 기대하고 있다. 예술경영지원센터 공연예술통합전산망(KOPIS)에 따르면 지난달 25일부터 지난 24일까지 집계된 예약 순위에서 '호두까기 인형'은 전국 기준 1~9위를 휩쓸었다. 국립발레단과 유니버설발레단의 '호두까기 인형' 서울 공연이 나란히 1, 2위를 차지했다. 국립발레단의 '호두까기 인형'은 내달 14~26일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유니버설 발레단 공연은 내달 18~30일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공연한다. 지방 순회 공연은 그 이전이다.

 


국립발레단 호두까기 인형 포스터

 


국립발레단은 볼쇼이 발레의 '살아있는 전설'로 불리는 안무가 유리 그리고로비치 버전의 '호두까기 인형'을, 유니버설 발레단은 상트페테르부르크 '마린스키 극장 스타일'의 발레를 무대에 올린다. 유니버설 발레단의 '호두까지 인형'이 제정 러시아 시절 황실 발레의 화려함과 세련미, 정교함을 갖췄다는 평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