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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군의 8월 대반격설을 추적해보면 드러나는 진실들..

비쉬켁 2022. 8. 8. 17:11

우크라이나 전쟁이 8일로 개전 166일째를 맞았다. 전선은 교착상태에 빠졌다는 분석이다. 그러나 일부 외신의 튀는(?) 보도가 계속 눈길을 잡고 있다. '우크라이나군의 대대적인 반격설'과 '남부 헤르손주(州)의 대회전(大會戰)설' 같은 게 대표적이다.

최근 우크라이나군의 반격 작전을 화두로 올린 매체는 미국의 경제전문지 월스트리트저널(WSJ)이다. 이 신문은 지난달 말 미국 당국자와 영국 국방부 정보당국 등의 분석을 근거로, "우크라이나 전쟁은 이제 '3단계'로 넘어가고 있다"며 그 증거로 우크라이나군의 반격작전을 들었다. 러시아군은 지난 2월 전격적으로 수도 키예프(키이우) 점령을 노리다가 실패한 뒤, 돈바스 지역으로 화력을 돌리는 2단계 군사 작전에서도 완전히 승기를 잡지 못하는 바람에, 우크라이나군의 반격을 허용하는 '3단계'로 접어들었다는 진단이다.

엘리엇 코언 미 국제전략문제연구소(CSIS) 연구원은 WSJ에 "우크라이나군이 헤르손을 되찾는 것은 즈메이니(뱀)섬 탈환이나 흑해함대 기함인 모스크바함 격침보다 더 의미가 크다"며 "서방의 꾸준한 군사·경제적 지원 덕분에 판세가 서서히 우크라이나 쪽으로 기우는 것으로 보인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WSJ의 '8월 반격설'은 새삼스러운 게 아니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과 대통령실 고위 인사들, 국방부는 그동안 경쟁이라도 하듯 "서방의 첨단 무기들이 도착하는 8월에는 대대적인 반격을 시작할 것"이라고 큰소리를 쳤다.


MK:군사전문가들, 향후 헤르손 대회전의 규모와 우크라이나군의 반격을 평가/얀덱스 캡처

 


WSJ 보도도 굳이 따져본다면, 8월이라는 시점에 맞춰 선수를 치고 나온 것이나 다름없다. 현지 매체 모스코프스키 콤소몰레츠(MK)는 지난 2일 "키예프(키이우)에서는 지난 한 달간 우크라이나군이 헤르손 남부 지역에서 강력하게 반격할 것이라는 말들이 쏟아졌다"며 "공격 장소를 미리 예고한다는 것은 '실행 작전'이라기 보다는 '구두탄'(口頭彈)에 가깝다"고 지적했다.

우크라이나군이 미국으로부터 받은 다연장로켓시스템 '하이마스'(HIMARS)와 첨단 로켓포와 강력한 자주포 등 서방 무기들을 앞세워 남부 헤르손주에서 반격에 나설지 여부는 아직 미지수다. 반격작전을 펴기엔 우크라이나군의 무장 수준이 미흡하다는 보도도 뒤따라 나왔기 때문이다.


FT:우크라이나군의 반격은 키예프의 무기가 바닥나기 때문에 철회돼/얀덱스 캡처

 


보도의 주인공은 공교롭게도 WSJ과 함께 세계 최고의 경제 전문지로 평가받은 영국 파이낸셜 타임스(FT)다. FT는 WSJ의 우크라이나 반격설 보도 나흘 뒤인 지난 4일, 익명의 우크라이나 고위 관리를 인용해 "우크라이나가 이달 중으로 예고했던 남부 헤르손주에 대한 대대적인 반격 작전을 사실상 철회했다"고 전했다. 이 고위 관리는 "우크라이나군은 아직도 필요한 무기의 30%도 갖고 있지 못해 반격 시점은 (서방) 무기를 최대한 비축한 내년 초가 유력하다"며 "(헤르손주) 반격을 위해 서방에서 받은 무기를 100% 사용할 수 있지만, 그럴 경우 무기가 완전히 바닥날 위험에 처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섣불리 반격작전에 나섰다가 실패할 경우, 완전히 주저앉을 수 있다는 뜻이다. 그는 우크라이나에게는 방어용 무기도 아직 부족하다고 했다.

외신이 우크라이나 반격설을 놓고 서로 치고받는 사이, 현지 언론은 거의 매일 러시아군 주도의 도네츠크인민공화국(DPR) 민병대, 루간스크인민공화국(LPR) 민병대, 시민 자원부대 등 연합군이 돈바스 지역(도네츠크주와 루간스크주)의 우크라이나군 방어선을 조금씩 바깥(서쪽)으로 밀어내고 있다고 전했다. 우크라이나군이 언제까지 돈바스 지역을 방어할 수 있을 지는 미지수지만, 사력을 다해 러시아군의 진격을 저지하고 있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다만, 현 방어선이 무너지면, 우크라이나의 동남부 지역 전체가 순식간에 러시아군에게 넘어갈 것이라는 전망이 유력하다.

그러다 보니, 돈바스 주둔 우크라이나군이 러시아 주도 연합군의 진격을 막으며 시간을 끄는 동안, 서방측 무기로 재무장한 최대 2만여명의 우크라이나군이 전략 요충지인 헤르손주에서 반격을 가해 전쟁의 판도를 바꿀 작전을 짜고 있다는 분석이 계속 제기된다. 그 시점이 WSJ의 8월이 될지, FT의 내년 초가 될런지 두고봐야 한다.

관건은 우크라이나가 잔뜩 기대하는 서방 무기들이 제대로 전장으로 인도되고, 100% 활용되고 있느냐는 점이다. 우크라이나 측이 "영토 회복 없이는 협상도 없다"고 큰소리를 치면서도 서방측을 향해 약속한 무기의 조속한 지원과 규모 확대를 요구하고, 필요한 무기 리스트를 계속 제시하는 것을 보면, 모든 게 당초 기대에는 못 미친 것으로 보인다.

WSJ 등 일부 외신이 우크라이나군의 헤르손주 반격을 본격적으로 거론하기 시작한 것은 두가지 측면에서 해석이 가능하다.


우크라이나 헤르손주. 오른쪽이 자포로제주, 아래가 크림반도다/지도출처:위키피디아

 


우선, 헤르손주의 지정학적 중요성이다. 헤르손주는 크림반도와 러시아 본토를 잇는 우크라이나 남부의 전략적 요충지역이다. 러시아는 특수 군사작전 시작 이틀 만에 헤르손주의 주도인 헤르손시를 비롯해 흑해·아조프해 연안 일대를 장악한 뒤 군민(군사및 민간)합동 정부를 세워 러시아화를 진행하고 있다. 헤르손주 군민합동 정부는 이르면 내달 중 러시아와의 병합을 위한 주민투표를 실시할 계획이다.

이에 맞서 우크라이나군은 전력상 열세인 돈바스 대신 헤르손주에 '하이마스' 등 서방 제공 주력 무기들을 배치하고 반격 기회를 노리고 있다. 최근에는 하이마스 로켓포 공격을 통해 러시아군의 보급선과 지휘소, 탄약고 등을 파괴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지지부진한 돈바스 전황보다는 새롭게 전개되는 헤르손주 전선에 외신의 관심이 쏠리는 건 당연하다.

현지 군사 전문가들이 반격 시점에 관심을 갖는 것은 우크라이나의 '작전 시계'다. 160일 이상 근근히 버텨온 우크라이나는 이제 서방측 무기를 앞세워 전세를 뒤집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그렇지 못할 경우, 서방측의 군사·경제적 지원을 기대하기가 앞으로 점점 어려워질지 모른다. 가장 든든한 우방인 유럽연합(EU) 회원국들도 찬바람에 불기 시작하면, 에너지와 식량, 물가 등 자국의 민생 문제를 최우선적으로 고민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젤렌스키 대통령이 기회가 있을 때마다 "추운 겨울이 오기 전에 전쟁을 끝내야 한다"고 강조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미국이 우크라이나군에 제공한 '하이마스' 로켓포/사진출처:미군


러시아의 후스눌린 부총리가 헤르손 등 점령지역을 다니며 전후복구 사업 등에 대해 주민들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현지 매체 영상 캡처


헤르손 군민합동 정부 수장 살도. 그는 최근 반러시아 세력의 독극물 공격으로 중태에 빠져 모스크바로 급히 후송된 것으로 알려졌다/텔레그램 캡처

 


더욱이 헤르손주가 예고한 대로 내달 중 러시아와의 병합을 위한 주민투표를 시행한다면, 그 결과가 예상대로(100% 통과) 나온다면, 우크라이나군이 이 곳을 되찾는 것이 매우 어려워질 것이다. 헤르손 일부 주민들이 여전히 러시아군에 협력하기보다는 군민합동 정부 고위인사에 대한 '게릴라식 공격'에 나서고 있지만, 주민투표에서 최종 결론이 난다면, 지역 분위기가 러시아편에 훅 쏠릴 가능성이 높다. 이를 위해 러시아도 루블화 경제권을 만들고, 교육하고, 전후 복구 작업에 긴급 생활자금 방출, 연금 도입 등 주민 달래기에 적극 나서고 있다.

우크라이나의 한 고위 관리도 WSJ에 "헤르손이 러시아에 병합되기 전에 탈환하지 못한다면, 주민들은 결국 러시아를 선택하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헤르손주의 주도 헤르손시를 가로지르는 드네프르강과 그 위에 놓인 안토노프스키 다리/얀덱스 지도 캡처


안토노프스키 다리가 부분적으로 차량 통행이 금지되자, 러시아군은 드네프로강에 임시 운송선을 띄워 자동차와 시민들을 실어나르고 있다/텔레그램 캡처

 


우크라이나로서는 시기적으로 보나, 전투력으로 보나 헤르손이 가장 가까운 시일 내에 반격 작전을 펴기에는 최적의 장소다. 우크라이나군은 이미 주도인 헤르손시를 동서로 가로지르는 드네프로강 주요 다리들을 '하이마스' 로켓포로 파괴했다. 가장 큰 다리인 1천366m짜리 안토노프스키(안토니우스키) 대교는 자동차 통행이 금지됐다. 러시아군이 헤르손시에 고립됐다는 외신 보도도 나온다. 하지만, 현지 언론을 보면 러시아군은 즉각 임시 부교를 설치하고, 임시 운송선으로 자동차와 시민을 실어나르는 중이다.

그 와중에 헤르손에 고립된 러시아 병사가 구조를 요청하는 영상을 SNS에 올렸다는 보도(영국의 더선)가 나왔다. 복면으로 얼굴을 가린 병사는 세르게이 쇼이구 러시아 국방장관을 향해 "도와달라"고 호소한다. 하지만, 헤로손의 전제 상황을 감안하면, 이 영상은 우크라이나측의 '프로파간다'로 여겨진다.


자칭 헤르손에 고립된 러시아군 병사라며 국방장관에게 구해달라는 영상을 SNS에 올린 복면을 쓴 병사/사진출처:더 선지

 


그 이유는 우크라이나군의 현지 판세 분석 때문이다. 올렉시 히로모우 우크라이나 장군은 지난 4일 로이터 통신에게 "러시아가 우크라이나군 반격의 기세를 꺾기 위해 남부 헤르손 지역에 먼저 공세를 펼칠 가능성이 있으며, 러시아 무기와 장비가 이미 대규모로 이동했다"며 "우리 영토(헤르손주 북쪽) 깊숙이 공격 작전을 펼 수도 있다"고 말했다.

우크라이나군 남부 작전 사령부도 전날(3일) "러시아군이 헤르손 지역에 병력을 결집 중"이라며 "헤르손의 드니프르강을 따라 진지를 구축하고, 돈바스 전선에 있던 정예군을 이 곳으로 이동 배치 중"이라고 했다. 우크라이나군이 반격에 나서기도 전에 먼저 되치기를 당할 위험에 처해 있는 셈이다.

현지 매체 MK는 러시아군이 헤로손 남쪽에서 크리보이 로그나 드네프로페트로프스크로 북진하는 작전의 조기 실행을 막기 위해 거꾸로 반격설을 퍼뜨렸다는 분석도 있다고 전했다. 나아가 키예프 선전·선동가인 올렉시 아레스토비치 우크라이나 대통령실 고문은 "러시아가 헤르손 남부 전선에 30개의 대대급 전술 부대를 집중시켰다"며 "러시아군의 공격 날짜를 8월 6일로 못박기도 했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현지 일부 전문가들은 우크라이나군이 돈바스 지역에서 주로 구소련 무기로 싸우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하면서 서방 무기들을 반격용으로 비축하고 있다고 조심스럽게 전망했다. 특히 영국에서만 1만명의 우크라이나 군인이 서방 무기 조작 훈련을 받고 있다는 점을 들어 조만간 2만명 규모의 '특별 군사령부'가 창설될 것으로 내다보기도 했다.


폴란드가 우크라이나에 제공한 T-72 탱크/사진출처:우크라이나군 텔레그램


미군의 M777 자주포/사진출처:우크라이나군 텔레그램


프랑스의 세자르 자주포/사진출처:위키피디아

 


이 특별 군사령부는 200~300대의 폴란드 개량형 T-72 탱크와 100여대의 장갑차량, 50~100기의 M109, 미국의 M777, 프랑스의 세자르 자주포, 30기의 105㎜ L-119 곡사포로 무장할 것으로 예상했다. 여기에 '하이마스' M270 로켓포 뿐만 아니라 기존의 '스메르치'와 '토치카-U' 미사일 등으로 후방 지원을 받을 것으로 추정했다.


뉴질랜드 곡사포 105mm L-119 곡사포/사진출처:우크라이나군 텔레그램

 


이 정도로 무장한 병력이 일사분란하게 움직인다면, 특정 지역의 러시아군을 향해 강력한 반격을 가할 수도 있고, 일부 부대를 포위·항복을 받아낼 수도 있다. 그 경우, 키예프는 지금보다 더 확고한 입장에서 러시아와 협상을 시작할 수 있다. 이 시나리오에서도 가장 핵심은 '시간'이다. "키예프에는 시간이 별로 없다. 찬바람이 불기 전에 시작해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우크라이나군의 8월 반격설이 그나마 신빙성을 갖는 것은 이런 이유에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