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 기사회생했다. '피겨 천재'인 러시아(공식적으로는 러시아 올림픽 위원회, ROC)의 카밀라 발리예바가 15일 시작하는 피겨스케이팅 여자 싱글 경기에 나갈 수 있는 자격을 얻어냈다. 느닷없는 금지약물(트리메타지딘) 양성 판정으로 싱글 경기 출전 여부가 극히 불투명했던 그녀로서는 출전 자격을 얻어낸 것만으로도 활짝 웃을 만하다.
하지만, 출전 이후 상황은 아직 불투명하다. 금메달이 유력한 발리예바가 세계신기록 혹은 올림픽 신기록으로 우승하더라도 당장 금메달을 목에 걸 수는 없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가 그녀의 출전 자격을 인정한 스포츠중재재판소(CAS)의 결정을 받아들이되, 발리예바가 메달권(3위 이상)에 들어갈 경우, 시상식 자체를 연기하기로 했다.
또 그녀가 쇼트프로그램에서 24위 내에 이름을 올릴 경우, 17일 치러질 프리스케이팅 출전 선수를 당초 24명에서 25명으로 한명 더 늘이기로 했다. 발리예바가 기록을 박탈당할 경우를 대비한 사전 조치다.
피겨스케이팅 단체전 여자 싱글 프리스케이팅 경기 후 관중들에게 인사하는 발리예바/사진출처:ROC 공식 텔레그램 계정
그 이유는 CAS가 14일 급박하게 내린 결정 때문이다. CAS는 이날 발리예바의 도핑 위반과 관련, IOC, 세계반도핑기구(WADA), 국제빙상경기연맹(ISU)이 제기한 이의 신청(항소)을 기각했으나 양성 판정에 따른 징계 조치에 대해서는 판단하지 않았다.
징계는 1차적으로 러시아반도핑위원회(RUSADA)의 권한이다. 러시아선수권대회의 도핑 검사 결과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RUSADA는 지난 8일 스톡홀름 반도핑 연구소의 양성 통보를 받은 뒤 즉각 발리예바의 올림픽 대회 출전을 금지했다. 그러나 당사자가 이의 신청을 제기하자, 재심 끝에 징계를 철회했다. 이 사실을 통보받은 IOC와 WADA, ISU가 러시아 측의 징계 철회가 부당하다며 CAS에 항소한 것이다. CAS의 기각 결정으로, 발리예바의 출전금지 징계만 풀렸다.
스포츠중재재판소(CAS), 발리예바를 출전을 금지할 경우, 돌이킬 수 없는 피해를 볼 수 있다고 밝혀/얀덱스 캡처
CAS의 발표문은 급박한 상황에 내려지는 우리 법원의 가처분 명령과 흡사하다. 현지 언론에 따르면 CAS는 “이 사안은 극히 제한된 사실 관계로 인해 (자칫하면) 선수에게 돌이킬 수 없는 피해를 입힐 수 있다"며 "(현재로서는) 잠정적 징계가 부당하다"고 결정했다. (돌이킬 수 없는) 현저한 손해나 급박한 위험을 방지하기 위한 임시 법적 처분인 가처분과 다를 바 없다.
CAS는 항소 기각 이유로 △ 발리예바는 16세 미만의 '보호 대상'으로, 징계를 낮춰줄 수 있는 특별 조항이 존재하고 △ 다른 선수들과의 공정함, 과잉조처 금지, 회복할 수 없는 피해, 이해관계 등을 감안한 결과, 출장 금지는 그녀에게 돌이킬 수 없는 피해를 입힐 수 있으며 △ 상대적으로 늦게 나온 도핑검사 결과로 선수의 법적 대응(이의 신청) 권리가 박탈당한 것 등을 들었다,
발리예바는 올림픽이 끝난 뒤 도핑 위반에 대한 조사를 받아야 한다. 러시아선수권대회를 관장한 RUSADA가 이를 수행한다. 그리고 발리예바에 대한 징계를 결정한다. IOC가 여자 싱글 시상식을 조건부로 미룬 이유다. RUSADA가 발리예바를 조사한 뒤 적절한 징계 조치를 내리지 않을 경우, WADA가 적극적으로 개입할 게 분명하다. 다만, 이번 올림픽 도핑 검사에서 음성을 받을 경우, 징계 여부를 결정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다시 한번 CAS의 판단을 받아야 할 수도 있다.
발리예바에 대한 CAS 청문회에는 이탈리아와 미국, 슬로베니아 출신 3명의 법률가들이 맡았다. 이들은 13일 밤∼14일 새벽에 걸쳐 발리예바, IOC, WADA, ISU, 러시아올림픽위원회(ROC), 러시아반도핑위원회(RUSADA) 등 6자의 의견을 청취한 뒤 IOC 측의 항소를 기각했다.
ROC관계자들과 연습장으로 들어서는 발리예바/현지 매체 동영상 캡처
연습 도중 투트베리제 코치의 지시를 받는 발리예바/사진 출처:@championat 현지 매체 텔레그램 캡처
전날 6시간 가까운 CAS 청문회에 참석한 발리예바는 14일 오후 중국 베이징 캐피털 실내경기장 연습링크에서 열린 공식 훈련에 모습을 드러냈다. 이전과는 달리 비교적 밝은 표정이었다고 한다.
발리예바는 ISU 피겨스케이팅 그랑프리 6차 대회에서 공인 세계기록(쇼트프로그램 87.42점, 프리스케이팅 185.29점, 총점 272.71점)을 작성한 만큼 이번 올림픽에서도 가장 유력한 금메달 후보다. 그러나 그녀의 깔끔한 쿼드러플(4회전) 점프와 화려하고 매끄러운 몸짓을 TV를 통해 지켜볼 수는 있지만, 그녀가 시상대에 오르는 모습은 기대할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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