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헷갈리는 우크라이나 교민들, 이젠 누구 말을 믿어야 할까?

비쉬켁 2022. 2. 4. 20:14

#1. 외교부는 우크라이나에 체류중인 우리 국민에게 가능한 한 빠른 시일내에 다른 나라로 출국할 것을 촉구했다. 동시에 주키예프 대사관에 외교부 본부와 인근 공관 직원 3명을 긴급 파견해 우리 국민의 안전을 확보하기 위한 준비를 갖추기로 했다.

#2.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미국 등 서방측을 향해 (전쟁) 위기감 조장을 중단할 것을 촉구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서방 지도자들이 내일 당장 전쟁이 일어날 것처럼 말하고 있다"며 "비슷한 규모의 러시아군 병력이 국경지대에 배치됐던 지난 봄과 비교하더라도 더 큰 위협을 느끼지 않으며, 가장 큰 위협은 불안정한 국내 상황"이라고 주장했다.

설 연휴를 앞둔 지난달 28일 한국과 우크라이나에서 나온 '같은 상황, 다른 대처 요구'에 우크라이나 교민들은 설 연휴 내내 갈등을 겪었을 게 틀림없다.


우크라이나 수도 키예프 시내 모습/유튜브 캡처


키예프의 연말 연시 야경/사진출처:키예프 시 홈피

 


우리 외교부는 '만의 하나' 진짜 전쟁이라도 일어날 경우를 대비해 여행 경보를 3단계로 격상한 데 이어 교민들에게 '안전한 곳으로의 출국'을 요구한 것으로 이해된다. 특히 주 우크라이나 미국 대사관이 연일 자국민들에게 즉각 출국을 촉구하고 있는 상태에서, 우크라이나 정부의 말만 믿고 느긋하게 있을 수만은 없다.

아프가니스탄 사태의 학습효과도 아직 남아 있다. 아프가니스탄 주둔 미군의 철수와 함께 탈레반 반군(현 집권세력)의 공격에 의해 급격히 무너진 아프가니스탄 수도 카불에서는 소위 '엑소더스'(탈출)의 대혼란 상황에서 우리 교민의 안전 확보에 비상이 걸린 바 있다. 만약 미국의 경고대로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다면, 우리 교민의 안전은 아프간에서보다 더 심각한 위기에 빠질 게 틀림없다. 주 우크라이나 대사관이 연휴 기간에도 현지 체류 교민들과 안전간담회를 열고 긴급 대피 계획 및 행동요령 등을 논의한 이유다.

외교부에 따르면 안전 간담회는 1일부터 9일까지 교민 대표, 선교사협회, 지상사, 유학생 등 단체별로 총 다섯 차례 열린다. 또 "수도 키예프와 서부 르비브, 남부 오데사 등 주요 3개 도시에 긴급대피를 위한 집결지를 사전에 지정하고 비상 식량 비축과 위성 긴급 전화 확보 등 실제 상황에 대비한 단계별 대피 계획을 지속적으로 점검해 나가고 있다"고 외교부 관계자는 설명했다.

지난 1일 현재 현지에 체류 중인 우리 국민은 417명으로 집계됐다. 즉각 출국을 촉구한 지난달 28일(441명)보다 24명 줄었다. 주 우크라이나 대사관은 일찌감치 외국 출국에 이용 가능한 교통편 정보는 물론, 육로 이동 시 출국 가능한 검문소 현황 등을 홈페이지(http://overseas.mofa.go.kr/ua-ko/index.do)에서 올려 놓고 교민 출국을 돕고 있다.

다른 한편으론 교민들의 비상연락망 재정비를 위해 교민들의 협조를 요청하는 공지문을 띄웠다. 대사관 측은 홈페이지를 통해 "비상시 긴급 공지사항 등을 전달받고자 하는 분들은 대사관으로 연락처 등을 알려줄 것"을 요청하면서 "교민의 신변 안전 점검을 위해 개인의 출입국 정보도 빠짐없이 알려달라"고 당부했다.

이같은 우리 정부의 발빠른 움직임과는 달리, 우크라이나 정부는 미국 등 서방 국가들의 섣부른 우크라이나 탈출(?) 조짐에 강한 불만을 드러냈다. 블라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최근 미국과 영국 등이 주 우크라이나 대사관 직원들을 일부 철수시킨 데 대해 "선장이나 다름없는 외교관들은 침몰하는 배에서 가장 마지막에 떠나야 한다"며 "우크라이나는 타이태닉호가 아니다"고 반발했다.

그렇다면 우크라이나의 현 상황을 어떻게 평가해야 할까? 급박하게 움직이는 미국을 따라가야 할까? 아직도 느긋한 우크라이나 정부를 믿는 게 나을까? 잘 알다시피 그 판단은 러시아, 즉 푸틴 대통령의 결정에 따라 달라진다.


푸틴 대통령(왼쪽)과 오르반 빅토르 헝가리 총리의 공동 기자회견/사진출처:크렘린.ru

 


다행하게도 푸틴 대통령이 지난 1일 우크라이나 상황에 대해 오랜만에 직접 입을 열었다. 현지 언론에 따르면 푸틴 대통령은 이날 모스크바를 방문한 오르반 빅토르 헝가리 총리와 정상회담을 가진 뒤 기자회견에서 "우크라이나의 군사 독트린은 (러시아에 합병된) 크림(반도)을 무력 등의 방법으로 (반드시) 수복할 것이라고 돼 있다"며 "서방 진영에서는 우크라이나가 나토에 가입하고, 크림을 (수복하기 위해) 공격할 경우, 러시아는 나토와 싸울 수밖에 없음을 누구도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미국이) 우크라이나를 나토로 끌어들이고 그곳에 공격용 무기들을 대거 배치하고 극우민족주의자들에게 돈바스 지역(우크라이나 동부의 도네츠크주와 루간스크 주)이나 크림반도 문제를 군사적 방법으로 해결하도록 부추기면서 우리(러시아)를 무력 분쟁으로 끌어들이는 시나리오가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그의 발언을 곧이곧대로 믿는다면, 푸틴 대통령의 머리 속에 든 전쟁 시나리오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아니라, 나토를 배후로 둔 우크라이나가 먼저 (러시아를 향해) 무력을 사용할 경우에나 가능한 것으로 해석가능하다. 그 시발점이 바로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이니, 그것을 막아달라는 게 러시아의 요구라는 점을 분명히 한 것이다. 이는 미국과 나토와의 안보협상에서 러시아가 일관되게 주장하는 요구와도 일맥상통한다.

미국 등이 우크라이나 침공의 전조로 해석하는 러시아군 병력의 국경 지대 집결은 지난해와 다를 바 없는 통상적인 군사훈련을 위한 군 이동이라는 주장이기도 하다.




러-헝가리 정상회담(위)과 건배 모습. '오미크론 변이'의 감염 예방(?)을 위해 두 정상은 '사회적 거리두기' 이상으로 떨어진 채 행사를 진행하는 듯한 모습이다/사진출처:크렘린.ru

 


이같은 관점에서 우크라이나 위기국면은 아프가니스탄의 엑소더스 직전과는 본질적으로 다르다고 할 수 있다. 러시아군의 군사훈련을 정권 탈취를 위해 카불로 향하는 탈레반의 공격과 직접 비교하는 것은 어불성설이고, 그 빌미를 준 10년만의 미군 철수도 없다. 미국은 오히려 동유럽에 군대를 추가 파견할 태세다. 결과적으로는 미국이 우크라이나에서 전쟁 위기를 조장한 뒤 이를 막는다는 명분으로 군 병력을 동유럽에 더 증강배치한다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푸틴 대통령은 또 "우크라이나 긴장 해소를 위한 서방과의 대화에 러시아는 열려 있다"며 "비록 쉽지 않은 일이겠지만, 우리는 결국 해결책을 찾을 것"이라고도 했다. 여전히 안보협상에 대한 기대감을 피력한 것이다.

우크라이나 주변 유럽국가들도 대응방식에서 미국과는 차이를 보인다. 독일 측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할 준비는 돼 있지만, 실행 여부는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고 했다. 러시아로부터 가장 큰 위협을 느끼는 국가 중 하나인 (발트 3국의) 에스토니아 마르코 미컬슨 의회 외교위원장은 "우크라이나 주재 대사관 직원들을 아직 대피시킬 필요가 없다고 본다"며 "현재 상황은 우크라이나에서 새로운 것이 아니며 앞으로 몇 주 안에 상황이 악화할 것으로 보지 않는다"고 말했다. 다만,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어떤 속셈을 가졌는지는 아무도 모른다"고 덧붙였다.